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이와 덴노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외조부 '''후지와라노 요시후사'''(藤原良房)의 후견으로 이복형 코레타카(惟喬) 친왕을 제치고, 황태자가 되었으며, 부황 [[몬토쿠 덴노]]의 급작스러운 붕어와 함께 불과 9세의 나이로 즉위하여, 요시후사가 외척으로서 정치의 실권을 잡았다. 조간 8년(866년)에는 '''도모노 요시오'''(伴善男) 등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'''응천문(應天門) 방화사건'''(응천문의 변)이 발생했다. 도모노 요시오를 신뢰하던 세이와 천황은 이 사건을 해결한 외조부 후지와라노 요시후사에게 사양하는 형태로 조간 6년(864년), 요시후사를 '''정식으로 [[섭정]]에 임명했다.''' 조간 18년(876년) 제1황자였던 9세의 사다아키라 친왕([[요제이 덴노]])에게 양위했다. 2년 반이 지난 겐쿄(元慶) 3년(879년) 5월에 출가하여, 10월부터 기나이(畿內)의 순행길에 올랐다. 이듬해 3월에는 단바(丹波) 국 미즈오(水尾) 땅으로 들어가 단식을 수반한 고행을 시작했다. 미즈오를 자신의 은거지로 삼아 새로 절을 짓던 도중, 좌대신 미나모토노 토오루(源融)의 별저였던 서하관(棲霞觀)에서 병을 얻어, 아와타(栗田)의 엔가쿠지(円覺寺)로 옮겨간 뒤 붕어했다. 그의 재위기간에 대한 역사기록은 이후 [[요제이 덴노]], [[고코 덴노]]와 함께 묶여져 '''[[육국사]]''' 중 하나인 《[[일본삼대실록]]》이라는 역사서로 편찬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